전문가답다는 것

건조한 상태에 놓여 있던 가슴을 따뜻하게 지피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탄 "황정순" 원로배우의

말 한 마디가 심지에 불을 붙여 주었지요. '천직'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는, 지극히 단순한 단어에 마비가 되었습니다.

장황한 미사여구의 틀을 벗어난 꾸밈없는 말 인사에서 저는 프로의 진면목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로

수학여행을 와서 영화 한 편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배우가 된 그녀는 그토록 열망하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합니다. 당연한 얘기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깊게 믿고 순간 순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게 또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지혜로 무장한 유쾌한, 그래서 더더욱 멋진'프로 중의 프로'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여든살 원로 배우의

메시지는 깔끔하고 강렬했습니다.

하나에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어느새 열...앎의 두께가 커지면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두터워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고생 끝에 밟은 계단이 하나하나 늘어날수록 소박한 마음가짐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별로 흔하지 않은 듯합니다. 부여된 책임과 의무를 귀하게 여기고 고마워하는 감정을 어쩌면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자신이 하는 일을 미치도록 사랑하면, 진흙길도 마다 않고 걷습니다. 끝을 모를 애정만이 수고하고

고생하는 과정을 받아들입니다. 좋아한다고 열정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열정을 굳게 품었다고 열정이 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이 능숙해지면 진흙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때가 찾아옵니다. 앞만 보고 그저 열심히 달려 왔다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얼굴이 두꺼워져 있지 않은지, 전문가라는 이유로 비전문가를 만만하게 보고 있지 않은지, 안락함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은지, 투정을 너무 자주 부리며 살고 있지 않은지, 금전적인 보상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노'를 여지 없이 외치고 있지

않은지, 되새기고 또 되새기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대중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 유익한 것을 줄 수 있는 '꾼'들은 어느 정도가

될까요. 당장 누리는 혜택이 없어도 말입니다. 숫자, 편안함, 외양 등에 비중을 두다 보면 희생정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물론 대접을 받을 만큼 받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겠습니다만 겸손한 감정만큼은 보물처럼 고이 지켜갔으면 합니다.

이름 석자를 내세우는 전문가라면, 노련미와 포근함을 아우르는 힘이 다분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우물을 파다보면 길이 보이고 길을 가다 길이 없으면 만들고, 만들어서 가다 보면 뒤어어 따라오는 자들에 의해 갓 태어난 길은

닦여지게 마련입니다. 불모지를 일구는 전문가의 길은 그래서 험난한 모양입니다. 아직 그 어떤 빛깔로도 물들지 않은 한해가 오고

있습니다. 2005. 내안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열정의 문을 또 한번 두드려 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