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의 외로운 싸움…"저는 부당 해고됐습니다"

노컷뉴스 | 2011/01/19 19:52
(최종수정 2011/01/19 20:41)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노조를 만들자' 글 올렸다가 해고 당해

[CBS사회부 조혜령 기자] 한파가 다소 누그러진 19일 오전 11시 30분 해고노동자 박종태(40) 씨가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 삼성전자 정문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을 '회사로부터 부당 해고된 박종태입니다'라고 소개한 뒤 피켓을 목에 걸고 차가운 겨울 바람 속 삼성 직원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한 시간여 동안 자리를 지켰다.

매주 수요일 삼성전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박 씨는 사내 게시판에 '노조를 만들자'라는 글을 올렸다가 지난해 11월 해고당했다.

"노조가 없어서 사원편에 서서 활동을 많이 했죠. 하지만 회사에서는 절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한 간부에게 삼성이 절 좋게 보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실망감과 자멸감으로 죽고 싶었습니다."

지난 1987년 삼성전자 제조그룹에 입사한 박 씨는 사업부 사원 대표로 일하며 사원들의 고충을 면담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회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육아 휴직 후 복직한 여직원들이 회사로부터 권고 사직을 권유받았을 때도 타 부서로 발령날 수 있도록 간부들에게 직접 메일까지 보내며 설득했다.

그러나 박 씨에게 돌아온 것은 '사원을 너무 많이 대변한다'는 사측의 냉랭한 평가였다.

해외 출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기발령을 받아 하루 8시간 동안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 앉아있을 땐 비참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대기발령과 사 측의 압박으로 박 씨는 급기야 한 달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박 씨는 의사에게 "회사에서 너무 힘들다. 스트레스로 가슴이 조이고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퇴원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던 박 씨는 두 딸과 아내에게 남기는 유서를 쓰고 고향인 전남 무안으로 내려갔다.

"'집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주시고 우리 예쁜 두 딸 행복한 생활과 엄마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란다'는 유서를 가슴에 품고 죽으려고 전라도 무안의 시골집까지 내려갔어요. 하지만 두 딸이 생각나 차마 죽을 수 없었습니다."

◈ "꼭 복직해 사원 대변하는 노조 만들 것"

충남 아산시 삼성전자 탕정사업장 故 김주현 씨의 투신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박 씨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 얘기구나'라는 생각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고 있을 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은 이제 풀어나가면 되지만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모든 것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시위 현장에서 만난 박 씨의 동료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힘들텐데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위로했다.

그는 삼성이 무조노 경영을 이어 온 이유에 대해 "노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해고된 사례를 보고 다른 직원들이 겁을 먹은 것"이라며 "노조 설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본보기로 해고되다 보니 다른 직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인 시위 현장에서 만난 다른 직원은 "안타깝지만 직원들이 (노조에 대해서는)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말해봐야 긁어 부스럼만 만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삼성은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비노조 경영철학을 신념화하고 창립 40주년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임직원 특별 교육'을 실시했다.

박 씨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박 2일로 진행된 교육에서 삼성은 비노조 기업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애플, 구글 등을 소개하면서 노조로 인한 조직 문화 붕괴, 노조의 폭력 정당화, 소비자 위에 노조 등의 이유를 들며 노조의 폐해를 교육했다.

박 씨는 "복직되는 날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복직해서 삼성에 사원을 대변하는 노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 씨는 지난달 27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출장 거부 등 업무 지시 불이행으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고를 결정한 것"이라며 "노조를 만들겠다는 글을 썼다고 해고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tooderigirl@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