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1998년 이후 성인 남자의 비만 비율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고 한다. 1995년 18.8%가 2005년 34.5%로 됐다는 것. 아시아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직장인의 비만 비율도 10년 전에 비해 약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IMF 관리체제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을 텐데 왜 살이 찌느냐고?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보이는 증상은 그 사회의 특성이나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난다. 미국의 경우 가슴 통증이 주로 나타나는 반면 한국은 위장 장애가 흔하다. 하지만 ‘가짜 배고픔’이 나타나고 이를 달래기 위해 달고 기름진 음식을 찾는 것은 동서양에 차이가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과잉 분비되는 호르몬 코르티솔은 체내에 에너지원이 필요하지 않아도 음식 섭취 욕구를 자극한다. 저녁 식사 이후 시간에도 코르티솔 농도가 줄어들지 않으면 비만으로 이어지기 쉽다. 특히 한국에서는 음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라 과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외환위기는 이미 극복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외형적 안정을 되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직장인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자신의 건강관리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 없어졌다는 것은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적응이 빠른 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럴 때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직(移職) 스트레스가 배우자를 잃어버렸을 때 받는 스트레스와 비교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는 스트레스가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리 사회에 그만큼 만성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 남성의 비만을 ‘IMF 비만’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이리라.


사실 직장인들은 건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근에 쫓겨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은 예사이고 잦은 회식과 음주, 운동 부족으로 인해 비만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여기에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니 그 결과는 뻔하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를 경험한 세대다. 먹을 것을 남기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순진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남은 음식보다 내 몸이 훨씬 소중하다.


우리의 직장인들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비만클리닉을 찾은 많은 직장인은 아내의 권유 때문에 병원에 온다. 늘어나는 뱃살을 ‘나잇살’로 치부해버리고, 건강진단 결과 나오는 ‘지방간’을 직장인에게 으레 따라붙는 계급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체형의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뚱뚱해졌다고 해서 병마(病魔)가 당신을 비켜가지는 않는다.


뱃살이 나오고 비만한 사람들은 평균수명이 짧아질 뿐 아니라 혈관 노화로 인해 나중에 심혈관 합병증에 빠질 위험이 높다. 비만은 병이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것처럼 식사조절을 하고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면 지하철 플랫폼에서라도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플랫폼 끝에서 끝까지 걸어라.


뱃살 빼기에 성공하면 건강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풍요로워진다.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더 큰 힘을 불러온다.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한때 비만에 시달리다 감량 성공 경험이 있는 필자의 체험담이다. 큰소리로 한번 외쳐보자. “나는 소중하다.”




박용우 강북삼성병원 교수·비만체형관리클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