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집값 하락! 김 PD, 하우스푸어를 말하다

ㆍ“집을 욕망하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집 있으면 부자’란 말도 이제 옛말이다. 더 이상 집은 사거나 투자하는 무엇이 아닌, 실제 사는 공간으로 의미가 바뀌고 있다. 중산층도, 서민도 부동산 앞에서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MBC-TV ‘PD수첩’에서 부동산 관련 보도를 이끌었던 김재영 PD는 「하우스푸어」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현재 남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어서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집만 한 채 가져도 그럭저럭 살 만한 시절이 있었다. 집은 그만큼 당연히 가져야 하고, ‘남들만큼 산다’는 것의 표상이었다.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 집에서 한 명만 벌면 그럭저럭 옹색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고 대학만 나오면 취업 걱정 없던 때가 있었다는 부모 세대와 그 이야기만으로도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는 세대가 공존하는 요즈음이다.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란 모순된 단어들이 하나의 이름 안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문제적인 그 이름은 바로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하우스푸어(House Poor)’다. 집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집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된다. 재건축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 가까운 대출을 받아 집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다 이자에 대한 부담과 재건축 상황의 악화로 결국 목숨을 끊고 만 A씨, 부동산이 폭등하던 시기에 4억원이 넘는 빚을 내 집을 샀다가 자산만 2억원, 이자와 거래 비용으로 1억원 이상을 날리고 불면증에 걸린 B씨 등.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출액수가 가계 규모에 비해 너무 크다는 것, 그리고 한창 부동산이 폭등하거나 이미 폭등세가 멎은 시기에 집을 샀다는 것,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란 환상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 등이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본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MBC-TV ‘PD수첩’을 통해 아파트 공화국의 이면을 들여다본 바 있는 김재영 PD는 언론과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말한다. 언론이 광고주이기도 한 건설사들의 논지나 주장을 세밀하게 검증하지 않은 채 계속 부동산이 부양될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며 정부에 발맞춰온 탓이라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집이 처한 현실 2006년이 지나면서 끝없이 오를 것만 같던 집값은 뚜렷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엄청난 부채와 이자 부담까지 감수하며 집을 샀던 많은 가계를 파탄 직전까지 몰아갔다. 이런 하우스푸어의 수는 어느 정도 될까?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선대인 부소장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95만 가구, 전국적으로 198만 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부동산이 고점에 달한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아파트 거래량을 기준으로 해 대략적으로 추산한 수치다. 이 숫자를 단순하게 이해하면 200만 가구에 가까운 이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짊어진 채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많거나 혹은 적은 수일 수도 있다.

사실 그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신화가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질 줄 몰랐던 대다수의 서민들로서는 이제 무엇을 위해 재테크를 하고, 청약을 붓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들은 현재 거의 집단적인 우울증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집’이 가져온 의미는 지대하다. ‘PD수첩’이 부동산에 천착하게 된 것도 그 보편적인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재영 PD는 취재하던 때나 지금이나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집에 대한 욕망이란 남보다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혹시 집을 가지고 있으면 집값이 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입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지금도 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 보낼 수 있는 내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마도 대출을 엄청나게 끼고 집을 사는 데 대한, 또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 5년 동안 남들처럼 집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였지만 개운치 않은 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집에 집착하는지 문득 돌아보게 되었고, 그것이 부동산을 파헤치게 된 첫걸음이다. 취재에는 따로 비결이 없었다. 그저 6개월간 발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한 부동산의 실체가 방송 분량과 책에 담겨 있다.

“2억원의 빚을 지고 집을 사서 이자를 포함한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지요. 그렇게 집을 사도 집값이 오른다는 믿음 때문이에요. 매달 이자를 150만∼200만원씩 내지만 집값이 금방 몇천만 원씩 뛴다고 믿으니까요. 합법적인 투기나 다를 바 없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가락 시영아파트 단지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쳤어요. 은마아파트의 4424가구, 판교의 900여 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직접 떼서 이들이 부동산을 구입하는 양상을 알아봤지요.”

황금 알 낳는 재건축, 지금은… 그는 작가들과 함께 팀을 이뤄 은마아파트(4424세대)를 전수조사(통계 집단의 단위를 하나하나 전부 조사하는 방법)했다. 한 통에 500원 하는 등기부등본을 떼는 데만 240만원 정도가 들었다. 조사해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2001년 이후 은마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의 70%가 빚을 지거나 전세를 끼고 구입한 것. 부동산시장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던 은마아파트는 금(金)마에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채무액의 집합소였다. 김재영 PD 또한 예상과 다른 현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통계에 잡히는 것과 등기부등본이라는 현실적이고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서류를 보는 것은 다릅니다. 실제로 채권 최고액 10억원이라고 적힌 서류를 보면 도대체 이분들은 어떻게 이자를 감당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판교신도시 1000여 세대를 분석했더니 평균 채무액이 3억원 정도였습니다. 평균 3억원이라고 하면 실제로는 5억원 이상 빚을 진 사람들이 20~30% 이상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부동산 현실에 비판적인 경제학자에게 이런 자료를 보여주었더니, 실제로 이렇게 빚을 많이 지고 분양을 받았냐며 정말 놀라더군요.”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더 이상 돈 있는 강남 부자가 투자하는 곳이 아니었다. 실제로 10년간의 재산 자료를 살펴보니 2006년 이후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에 투자한 1급 고위 공직자를 찾기 힘들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위 공직자 등 부동산 관련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들이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을 팔고 차액을 챙겨 사라진 틈새로 중산층은 물론 서민까지 빚을 내 몰려든 것이다. 증권시장에서 개미 투자자들이 잃은 돈이 소위 큰손들을 먹여 살리는 판돈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김 PD는 6개월 동안 강남 재건축 현장, 서울 시내의 뉴타운, 판교를 비롯한 수도권 신도시들을 지켜보며 거대한 매트릭스를 목격했다. 어디에도 아파트 로또나 신화는 없었다. ‘탐욕과 돈에 눈 먼 자들의 도시’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회의 상식적인 중산층마저 욕망에 눈멀게 해 루저(Loser)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부동산 매트릭스를 경고하고 싶어서 취재한 자료를 모아 책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이 현상은 우리가 집(Home)을 저버리고, 주택(House)에 집착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부자 아빠 신드롬’으로 무엇이든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걸쳐 생겨났고, 결국은 하우스푸어를 낳게 된 것이지요. 과연 우리에게 집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그리고 우리가 돌아봐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PD는 사회학도답게 현상을 넘어 실체를 보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다. 과연 그도 재테크란 것을 하는지 궁금했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혹시 부인이 관리하는 부분이 있는지, 독자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물었더니 매우 ‘정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는 것은 건방진 이야기일 것이고, 또 특별히 하고 있는 재테크 방식도 없습니다.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제가 생활을 영위해 나갈 때 유념하는 단어가 있는데 ‘과유불급’입니다. 청빈하게, 도덕적으로 살자는 게 아니라, 다만 ‘지금 과하게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자는 겁니다. 하우스푸어든, 서브프라임 사태든 제가 보았을 때는 사회 전체가 과하게 욕심을 내다가 벌어진 불행한 사태입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아쉽게도 누군가가 아파트로 과하게 벌어들인 불로소득과 그것을 가능케 한 시스템의 희생자가 하우스푸어일 것입니다. 사회적, 개인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대안을 말하기보다 틀을 바꿔야 하우스푸어 담론이 활발해지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서민대책에 공들이는 정부는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4월에 미분양 주택의 환매조건부 매입 확대와 지방 미분양 아파트의 양도세 감면 등의 대책을 내놓았고 보다 강화된 거래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주택기금 지원이나 금리 인하, 주택담보대출 완화, 부동산세제 감면 확대, 보금자리주택 공급 조절 등 다양한 대책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담보 가치의 하락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어 실질적인 하우스푸어 구제책에 대한 회의가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은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80%가 넘는데, 50% 미만인 미국, 영국, 일본 등보다 민간 소비와 건설 투자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안 좋은 상황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2009년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일시적인 집값 상승에 그쳤던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 PD는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하우스푸어는 아파트 공화국, 부동산 광풍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고 현상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나오는 ‘하우스푸어 어떻게 할 것인가?’, ‘구제의 대상인가?’ 등에 대한 논란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현재 구조에서 출발한 논의가 아닌, 부동산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안을 따지기 전에 하우스푸어에 빠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집이 꼭 필요한 사람은 안 살 수 없으니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 돈을 모아서 사면 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근로자가 대출을 받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 뒤 원리금을 갚아 나가려면 소득이 최소 현재의 1.5배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 가계 소득의 30% 이상을 대출이 차지한다면 위험 신호로 봐도 된다. 이미 하우스푸어의 수렁에 빠진 이를 위한 방안을 묻자 김 PD는 “그것은 제 몫이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한다”고 잘라말한다.

“자산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각자 상황에 맞게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그때 판단 역시 개인의 몫인데요, 판단에는 개인의 가치관이 투영되겠지요. 제가 개인의 가치관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이때에도 과연 우리 사회에서 집이란 무엇인가? 토지란 무엇인가? 아직도 나는 ‘아파트’를 매개로 돈을 벌 꿈을 꾸는가, 마는가? 이런 결정에는 개인의 가치관이 절대적일 겁니다.”

하우스푸어를 말하기 힘든 조건에는 사실 계층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같은 빈곤 상태라 해도 집을 가졌다는 것과 가지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격차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우스푸어의 기저를 살펴보면 계층만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우스푸어는 ‘현상’이기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벌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집에 관한 논의에서 소외되는 것은 서민이 아니라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불우한 세대다.

“하우스푸어는 서민이나 중산층, 혹은 계층이나 계급이라는 카테고리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자산과 소득이 많아도 하우스푸어가 될 수 있는 사회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사실 2억~3억원 빚을 지면 한 달에 이자만 200만원 정도 되는데, 이것을 감당할 만한 중산층이 얼마나 될까요? 원금은 줄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강남의 웬만한 아파트 호가가 10억원 이상 하는데 30~40%만 빚을 얻으면 자산과 소득이 많은 중·상류층도 견디기가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미래 세대들에겐 어쩌면 하우스푸어 논란은 남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제가 만나본 그 세대들은 서울 아파트 한 채에 3억~4억원 이상 하는 현실에서 그 단위 자체에 대해 피부로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정확할 수도 있겠지요. 집값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평생을 모아도 모을 수 없는 액수니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할 액수의 돈을 아파트라는 허상에 쏟아 부었고,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속 시원한 감은 없었지만 여기서 인터뷰는 접어야 했다. 어쩌면 대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 그 자체를 직면하고 모두가 부동산이라는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나야 다음 단계의 논의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김 PD가 현재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즈음엔 조금은 달라진 흐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모두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글 / 위성은(객원기자) ■도움말 /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 ■참고 자료 / 「하우스 푸어(김재영 저, 더팩트)」, 「부동산 계급사회(손낙구 저, 후마니타스)」>